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가디슈 전투 (문단 편집) === 아프리카의 뿔 === 친미 정책(과 동시에 친중국 정책)을 펼치던 시아드 바레가 반란군에 의해 축출을 당해 나이지리아 망명길에 오르자 [[미국]]의 발등에 특히나 불이 떨어졌다. 소말리아 북쪽에 위치한 아덴 만을 건너면 [[예멘]]이고 동시에 '''[[중동]]'''이다. 다시 말해 [[산유국]]과 가까우며, 그 산유국 중에 하나가 바로 [[쿠웨이트]]를 [[걸프전|침공했다가 호되게 얻어맞아]] 엉엉 울고 있던 [[이라크]]다. 1년 전 걸프전처럼 중동에서 유사시 즉각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의 주둔지로는 소말리아가 최적이었다. 중동에 미군을 주둔시키기 힘든 데에 결정적인 이유가, 그 당시 이스라엘이 레바논과 전쟁 중에 있었으며 이스라엘 자국 내에서는 팔레스타인과 영토 분쟁이 진행중이었다. 즉 중동 내부에서의 전쟁 불씨가 미군에게까지 번질 우려가 있어서 소말리아말고는 딱히 대안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원래 시아드 바레 시기 미국은 바르바라 항구를 조차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즉 원래 소말리아 주둔이 가능했었다. 문제는 [[걸프 전쟁]]이 벌어지던 1990년대에는 미군 주둔이 문제가 아니고 소말리아 내에서도 시아드 바레 정권이 무너지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바르바라 항구도 원래 거주민인 이자크 부족이 점거했고 미국과 시아드 바레의 협정은 무시되었다. 미국이 시아드 바레를 실드 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더군다나 소말리아는 아프리카의 동쪽 끄트머리에 있으며, [[인도양]]으로도 바로 진출할 수 있는 '''아프리카의 뿔'''이었다. 지리학적으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소말리아를 안정시키면 나쁠 것도 없거니와 인도양 한복판에 깃발을 꽂을 수 있기도 하여 소말리아의 치안을 확보하는 것은 대외적으로는 인권과 평화를 사랑하는 미국이라는 프로파간다를 선보이면서 실질적으론 중동과 인도양 지역의 전략적 요충지를 선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더구나 UN 평화유지군과 별도의 전투부대 파병은 클린턴 정부 시절이지만, 파병안이 통과된 시절은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정부였다. 조지 부시는 이미 재선 실패가 확정되어서, 1개월이 지나서 1993년이 되면 클린턴 행정부가 바로 들어서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조지 부시는 아무런 부담도 없이 소말리아 파병을 결정할 수 있었다. 잘되면 파병을 결정한 자신의 공적으로 돌리고, 잘못되면 클린턴한테 떠넘기면 그만인 꿀빠는 상황. 게다가 UN이 숙이고 들어온 것을 거절해서 인권에 부정적이란 인식을 줄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 부시는 사실 인권이나 평화유지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결국 부시의 판단이 얼마나 신속했느냐 하면, 앞서 언급한 794 결의안이 UN에서 채택된 것이 12월 3일인데, 미군 해병대 원정단이 처음 모가디슈에 상륙한 것이 불과 1주일 후인 12월 9일이었다. '''전형적인 후임자 엿먹이기''' 정책이었던 것이다. 다만 이 엿이 이 정도 지옥이 될지는 아마 부시도 모르지 않았을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